생극면

<가정개(佳亭개, 가징개)>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가정개라 불린다. 남쪽으로 금왕읍 정생리와 접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국도 37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 도관리와 곤지리, 생탕리 각 일부와 충주군 금목면의 각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관리의 ‘도’자와 신촌의 ‘신’자를 따서 도신리라 명명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도신리에는 자연 마을로 가정개와 도관리 등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 칠성산이 있으며 그곳에 물이 차고 옻이 오른데 효험이 있다는 옻샘이 있는 칠성골이라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재까리보, 홍보, 돌보 등으로 부르는 들이 있다.

 

 

<관말(館말, 관촌:館村)>

음성군 생극면 관성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동남쪽에 있는 팔성리에서 관말로 넘어오는 아홉사리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넘다 죽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마을에서 관을 짜게 되어 관말이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 무극역의 역관(驛館)이 있어서 관말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마을 앞으로는 옛 영남대로인 지방도 318번이 지나고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동, 무수동, 관촌, 병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관성리라 명명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관성리에는 자연 마을로 마날미, 무술, 진골, 관말 등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 팔성산(八聖山 378m)이 있으며, 팔성산 쪽으로 도둑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동쪽으로는 아홉사리고개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관성저수지가 있다.

 

 

<능안(陵안)>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양촌 권근 삼대(권근·권제·권람) 묘소가 있는데, 묘소 크기가 꼭 능만 하다고 하여 능안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방축동에 야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양촌 권근 삼대묘소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후로 능안이라 하였다. 방축리는 방축말, 능안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은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마을 북쪽으로 양촌 권근 삼대묘소가 있으며, 묘소 아래에는 소류지가 있다. 마을 어귀에서 감곡면 상평리 개터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능안에는 권근의 사우인 문충공 부조묘와 권준의 사우인 안숙공 부조묘, 권반을 봉안한 안양공 부조묘가 있다. 또한 안동권씨의 재실과 양촌 기념관인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추원재는 안동권씨 문충공파 종중에서 1985년에 새로 지었다. 추원재에서는 음력 9월 28일에 양촌 권근 삼대묘소와 안숙공까지 절사(節祀)를 지낸다. 예전에는 마을에 6가구 정도가 살면서 각 종파의 종중일을 관리하였으나 현재는 문충공파종회를 관리하는 한 가구만 남아 있다. 마을 어귀부터 안동권씨의 위답인 농경지가 있다.

 

 

<다농개(多農개, 다롱개,다농포)>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서쪽에 위치하는 마을로, 마을의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으며, 예전에 한강의 나룻배가 들어왔다 하여 다농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쪽으로 팔성리, 동쪽으로 차평리 본말, 남쪽으로 서낭당이 새들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 신창리, 양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리의 ‘신’ 자와 양곤리의 ‘양’ 자를 따서 신양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신양리에는 곤재, 새들, 서낭당이, 새천이, 중말, 난이골, 다농개 등의 마을이 있다.

마을 앞으로 응천이 흘러 농경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도랑말>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5㎞ 지점인 오생리 남부 지역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못고개, 북쪽으로 오룡과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이 도랑가에 있다고 하여 도랑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여 물방아거리라고도 한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생리, 오룡리와 금목면의 신대리를 병합하여 오룡리의 ‘오’ 자와 상생리의 ‘생’ 자를 따서 오생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오생리에는 도화동, 통동, 못고개, 수용, 다락개, 오룡 등의 마을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 멀리 부용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 뒷산을 국수골이라 부른다. 마을에서 음성군 금왕읍 육령리로 넘어가는 길에 은이 세 말이나 나왔다고 전해지는 은실내고개가 있다. 마을 앞으로는 부용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흐르고 있다.

 

 

<동편(東便)>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송림의 동쪽에 있어 동편이라 부른다. 송림은 동편과 서편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예전에 송림을 개간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동쪽으로 방축리, 서쪽으로 임곡리, 남쪽으로는 팔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곡리와 치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곡리라 명명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송곡리에는 동편, 서편, 기와집말, 중통말 등의 마을이 있다.

송림 동북쪽에는 높이 109m의 망월산이 있고, 마을 동쪽에는 앞들이라는 큰 들이 있다. 동편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청용모퉁이라 하는 데, 이곳에 장자가 살던 장자 터가 있고 산구렁에는 옛날 절 터가 있어 기와장이 발견된다. 또한 김원조 독립투사의 묘가 송림 동쪽 너머에 있다.

 

 

<마날미(마날뫼)>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5㎞ 지점에 위치하며, 관말 남쪽 마날봉 밑에 있는 마을로 산의 이름을 따서 마날미(마날뫼)가 되었다. 동쪽으로 병암리, 서쪽으로 금왕읍 호산리와 각회리, 북쪽으로 팔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동, 무수동, 관촌, 병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관성리라 칭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관성리에는 마날미, 관말, 무술, 진골 등의 마을이 있다.

마을 북쪽에 마날봉이라는 산이 있으며, 관성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골짜기로는 천지참나무골, 가작골, 잠다리골이 있고, 고개로는 장고개, 무술고개, 관말고개, 화우리고개가 있다. 마날미에서 북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양달말이 있고,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음달말이 있다. 양달말과 음달말 사이에는 집이 두 채밖에 없어 외딴터라고 부른다. 음달말 오른쪽에 있는 들을 안민산이라 하고, 외딴터와 양달말 사이에 있는 들을 대림거터라고 한다.

 

 

<무술>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5㎞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병암리, 서쪽으로는 금왕읍 호산리, 남쪽으로는 금왕읍 각회리, 북으로는 팔성리와 각각 접해 있다.

원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하였으나 1906년(고종 43)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동, 무수동, 관촌, 병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관성리라 하였으며,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주위 마을로는 관말, 마날미, 진골이 있다. 들로는 가시살골, 광대박, 까치울, 짐배울이 있다. 마을 뒤에 우등산이 있는데, 원래는 무등산(無等山)이라 하였으나 불리는 과정에서 우등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우등산에 올라서면 앞쪽으로 넓은 들이 있어 수도로 정하려 했으나, 수맥이 좋지 않아 취소하였다고 한다. 골로는 다랭이골, 북당골이 있고, 고개로는 아홉 명이 고개를 넘어야 무사히 넘을 수 있다는 험준한 고개가 있다. 이 고개 북쪽으로 도둑골이 있다.

무술은 관촌 동남쪽에 있으며, 옥녀가 춤을 추듯 수려한 산맥을 뒤로 하고 있으며, 윗무술과 아랫무술로 구분되어 있다.

1968년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받은 한 쌍의 황새가 1971년 무술로 들어와 둥지를 틀었으나 1978년 밀렵꾼에 의해 수컷이 희생되었다. 암컷은 1978년 8월 창경궁으로 옮겨져 보호를 받다가 1994년 서울대공원에서 수명을 다했다.

 

 

<방축말(防築말, 안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방축말을 안말이라고도 한다.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축동에 야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방축리라는 명칭으로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뒤 북쪽으로 낮은 산이 있으며, 마을 남쪽과 서쪽으로는 응천이 흐르고 있어 농경지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방축말 앞으로 국도 37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양촌 권근 삼대묘소가 있는 능안에서 감곡면 상평리로 통하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본말(벌말)>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수레들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벌말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는 차곡리, 서쪽으로는 송곡리, 남쪽으로는 신양리, 북쪽으로는 방축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수레의산 밑에 있는 들이라 수레들, 또는 차평이라 했는데,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말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평리라는 명칭으로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본말 남쪽 서낭당으로 가는 길옆에 있는 넓은 들을 두들기번던이라 부르고, 신양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서낭당이고개라 한다. 본말 동남쪽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곳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새들>

음성군 생극면 신양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6·25전쟁 때 마을이 파괴되어 지금의 자리에 마을이 새로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서쪽으로 팔성리, 북쪽으로 서황당 및 다농개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신창리·양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리의 ‘신’ 자와 양곤리의 ‘양’ 자를 따서 신양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신양리에는 곤재, 새들, 서낭당이, 새천이, 중말, 난이골, 다롱개 등의 마을이 있다.

마을 앞 남쪽으로 응천이 흐르며,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새천이, 신창리(新昌里)>

음성군 생극면 신양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천이 또는 신창리(新昌里)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 신창리, 양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리의 ‘신’자와 양곤리의 ‘양’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신양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 1월 1일자로 신양2리에서 신양3리로 분리되었다.

마을 동쪽으로는 산 모양이 전체적으로 동그란 형태의 동그락산이 있고, 동북쪽으로는 예전에 독사가 많이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독사골이 위치한 만두석산이 있다. 그리고 새천이에서 생극면 차곡리 수레울로 넘어가는 이대울고개가 있다. 마을 앞으로는 새천이천이 오신천과 합류하여 응천으로 흘러든다.

 

 

<새터(차평리), 신대(新垈)>

음성군 생극면 차평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새로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신대(新垈)라 불린다. 남쪽으로 중말, 서쪽으로 양재, 북쪽으로 방축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말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평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된 지역이다. 본래 현재의 마을 위치에는 마을이 없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로가 발달하면서 새로이 형성된 마을이다.

넓은 들판 가운데 형성된 마을로, 동쪽으로 차평저수지가 있고, 마을 앞으로는 응천이 흐르고 있다.

 

 

<석병무(石屛武), 병산리>

음성군 생극면 병암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병산리라고도 불린다. 남동쪽으로 병암2리의 자연 마을인 만담이 있고, 서쪽으로는 관성리, 북동쪽으로는 병암4리의 자연 마을인 안곤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도관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생극면 병암리에 포함되었다. 석병무는 예전에 석병무와 시미실로 나누어졌다가 근래 한 마을로 합쳐졌다.

동쪽으로 장자봉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색백재라는 낮은 산이 둘러쳐 있다. 남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금정저수지가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응천이 흐른다.

 

 

<송림(松林)>

음성군 생극면 송곡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예전에 소나무가 많은 곳, 즉 송림을 개간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쪽으로는 임곡리와 마주하고 있으며, 동편송림과 서편송림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곡리와 야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곡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하였다.

남쪽으로 매재봉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임오산이 있다. 마을의 남쪽과 동쪽으로는 널따란 들이 형성되어 있다. 산도 높고 골짜기도 많아 북쪽으로는 뒷골, 중퉁말로 가는 개창골, 임오리 방향의 부처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동쪽으로 응천이 흐른다.

 

 

<수레울(수리울)>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수레의산과 수리산(愁離山) 아래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수레울 또는 수리울이라 불린다. 남쪽으로는 건너말, 서북쪽으로는 오얏골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忠州郡) 생동면(笙洞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차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곡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동북쪽으로 수리산, 남쪽으로 수레의산이 있다. 마을에서 생리 망태울로 넘어가는 서낭고개, 오얏골로 가는 큰 고개로 장고개가 있다. 수리산 남쪽에 있는 매내미 골짜기와 수리산 서쪽의 작은절골이 마을 가까이 있다. 마을 앞으로 수리산에서 발원한 차곡리천이 흐르고 있다.

 

 

<양재(陽齋)>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쪽으로는 본말, 남쪽으로는 신양리 다농개, 북쪽으로는 담사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말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평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차평리에는 새터·골말·중말·본말·양재·담사리 등의 마을이 있다.

넓은 들판 가운데 형성된 마을로, 동쪽으로 차평저수지가 있다. 마을 앞 국도 4차선 건너에는 응천이 흐른다.

 

 

<양촌(임곡리, 양달말,품실)>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임오산 줄기 남쪽과 팔성산 북쪽으로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밑 계곡 속에 있어 품실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하촌말, 남쪽으로 음촌(음달말), 북쪽으로 임오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임오리와 품곡리를 병합하고 임오리의 ‘임’ 자와 품곡리의 ‘곡’ 자를 따서 임곡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하였다. 마을로는 음달말·양달말·임오산이 있다. 여러 마을을 합쳐 품실이라고도 한다.

마을 남쪽으로는 팔성산이, 북쪽으로는 임오산이 마을의 남쪽과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형세이다. 따라서 마을에서 외부로 통하는 고개가 많다. 이천시 율면 오성리 장성고로 가는 노단테고개, 이천시 율면으로 가는 새재, 품실에서 이천시 율면으로 가는 황고개 등이 있다. 산이 높아 골짜기도 많이 있는데 북쪽으로 새남터골, 북서쪽으로 요복골, 남동쪽으로 뒷골 등이 있다. 마을 앞으로는 품실천이 흐르고 있다.

 

 

<음달말(임곡리, 음촌:陰村)>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팔성산 북쪽 음지가 됨으로 음달말 또는 음촌이라 부른다. 동쪽은 송곡리, 서쪽은 이천시 율면 오성리, 남쪽은 팔성리, 북쪽으로는 이천시 율면 월포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임오리와 품곡리를 병합하고 임오의 ‘임’자와 품곡의 ‘곡’자를 따서 임곡리라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음달말 북쪽에는 임오산과 자오리산이 있고, 골짜기로는 토골·무정골·자오리골이 있다. 무정골로 가는 길에 참샘이 있는데, 예전에 절 터가 있었다고 한다. 음달말 북서쪽에는 중해샘이 있다.

400여 년 이상 된 꾸지뽕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진말(고진대)>

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곤재 동쪽 이진봉 밑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쳤다고 하여 이진말 또는 고진대라고 한다. 동쪽은 오생리, 서쪽은 관성리, 남쪽은 도신리, 북쪽은 신양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생탕동·곤지암리·도신리·병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병산리의 ‘병’자와 곤지암리의 ‘암’자를 따서 병암리라 해서 음성군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동쪽에는 이진봉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석성를 쌓았다고 하며 산위에는 성 터가 있다. 들로는 광대봇들과 새바지가 있고, 깃대배기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기(旗)를 세운 곳이라 한다. 이름 있는 바위로는 전진바위·팽개바위·두껍바위가 있다.

이진봉 동쪽에 산제당골이 있는데 매년 정월 택일하여 제를 지낸다. 제사 기간 중 마을 신작로와 접한 곳 전부에 금줄을 두르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 마을 사람들도 이와 같이하고 있다. 서낭거리는 이진말 서쪽에 있으며, 예전에는 무당이 살았고 장승도 있었으나 현재는 없고 돌무지만이 남아 있다.

 

 

<중말(신양리)>

음성군 생극면 신양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쪽으로는 새천이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병암리의 이진말, 서쪽으로는 생극면 소재지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양곤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그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평리와 신창리, 양곤리 일부와 함께 신양리로 편입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교통의 요지로 마을 규모가 지금의 생극면 소재지보다 컸다.

동남쪽으로 이진봉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안산밭들이 있고, 그 사이로 수리내가 흐르고 있다.

 

 

<중생(中笙), 벌말>

음성군 생극면 생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북쪽으로 안터가 자리잡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다락개, 서북쪽으로는 주막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예전에는 벌말이라고도 불렸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생동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생동면을 폐지하고 중생리와 하생리를 병합하여 생리라 하였는데, 이때 생리에 포함되었다.

동북쪽으로 수레의산(679.4m)이 있고, 동쪽에 203.9m 고지의 산이 있다. 남쪽으로는 너른골, 남서쪽으로는 방아골 골짜기가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오생리천이 흐르고 있다.

 

 

<중턱>

음성군 생극면 생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서쪽으로는 생3리의 안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중생, 동남쪽으로는 오생리의 북각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중생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생극면 생리에 포함되었다.

북쪽으로 수레의산(679.4m)이 있고, 동쪽으로는 203.9m 고지의 산이 있다. 마을 뒤로 산지터골이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안터천이 흐르고 있다.

 

 

<진골(陣골, 진동:陣洞)>

음성군 생극면 관성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임진왜란 때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진골 또는 진동(陣洞)이라 불린다. 북서쪽으로 관성3리의 자연 마을인 마날미와 관성2리의 자연 마을인 무술(무수동)이 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진동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관성리라 하여 생극면에 포함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조선 중기에 단양우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으로 우등산이 있으며, 마을 앞뒤로 산이 있는데 앞산, 뒷산이라고 한다. 마을 북쪽으로 관성저수지가 있다.

 

 

<토끼실(토실:兎室,토곡:兎谷)>

음성군 생극면 팔성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뒷산이 토끼처럼 생겨 토끼봉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토끼실이라 불렀다. 토실(兎室) 또는 토곡(兎谷)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쪽으로는 병암리의 자연 마을인 안곤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팔성리의 자연 마을인 지부내(지비천)·말마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말마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팔성리에 포함되어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토끼실은 말마리나 지부내(지비천)보다 늦게 형성된 마을로 교통로가 발달하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서북쪽으로 팔성산(377m)이 있고, 마을 뒤로 토끼봉이 있다. 마을 앞으로 응천이 흐르고 있는데, 여기에 걱정보가 설치되어 있다.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 “물이 좋고 땅이 비옥하여 흉년이 드는 해가 적어 살 만한 곳”이라 적을 만큼 마을 앞으로 널따란 평야 지대가 있어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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